top of page
1-1.png

소승이 무어 도울 것이 있소?

털뭉치(@MAN_CHUN_SIK) 님 커미션

ink-1282490_1920.png
난소유.png
1-2.png
이름

혁공교주赩供敎主 난소유暖所有 , 자 진아眞我

1-2.png
​나이

37세

1-2.png
체격

178cm ,  마름

1-2.png
문파

단혁공교壇赩供敎

 

대승 불교와 내륙의 토착 신앙이 결합해 만들어진 대승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문파 중 하나이며, 문파 요충지는 사천이다. 내몽고에서 흘러들어온 불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편성된 탓에 교敎 의 형태를 띈다. 교파이니만큼 타 문파들에 비해 종교색이 비교적 짙은 경향이 있다. 근거지가 되는 사찰은 징정사澄淨寺. 퍽 커다란 사찰이기에 제대로 총림叢林 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문파의 고유 복식은 정해져있지 않으나 이들 모두 고행을 도맡아 하는 이들이므로 각자의 활동성에 맞게 법의法衣 에 해당하는 분소의糞掃衣 를 입는 것이 규칙이다. 가사를 두르는 형태는 통견通肩, 우견편단右肩偏袒, 안타회安陀會 등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무채색 계열로 착의하길 장려하는 기본 의복을 제외하면 다들 자신의 편의에 맞게 단정한 복식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적 원칙에 따라 오로지 붉은 법의만을 허용하고 있는 편.

 

대표 무공으로는  권법인 비천격飛泉格, 포박술인 나타진연옥哪吒塵煙狱, 경공인 계상답보界相踏步 등이 있으며, 분위기는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

1-3.png

굽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끝부분이 검게 물든 색이어서 두가지 색을 가지고 있으니 눈에 밟히는 것을 보면 모 산짐승을 닮은 것도 같았다.

두꺼운 눈썹과 불그스레한 눈꼬리가 샐쭉하니 서로 빗겨나가듯 기울어졌고, 얼굴 반쪽을 다 덮은 묵빛 안대 아래로는 미처 다 가려지지 않은 문신 한 획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대로 늘어뜨리면 둔부를 훌쩍 넘어서까지 늘어졌을 머리타래는 곱게 땋여 목을 한바퀴 휘이 둘러 어깨에 척 걸쳐져 있었으며, 겉보기엔 썩 우아하고 늘씬한 것이 되려 표표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몸가짐이 단정하고 언제나 정결하게 매무새를 유지하고 있어 그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검은 옷 위로 둘러입은 붉은 법의를 안타회安陀會 로 차려입어 매일 바쁘게 돌아다니는 그에겐 중숙의中宿衣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른 승려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길게 품을 내어 입은 법의 아래로 붉은 줄 하나 죽 그어진 신발코가 종종 눈에 들어왔다.

 

귓가에서 반짝이는 귀걸이가 낼 리 없는 금속음을 낸 것도 같았다.

찰랑, 하는 소리가 어째서인지 옷자락 끝을 살랑이며 천하를 돌아다니던 그의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1-4.png

[ 소박한 / 싹싹한 / 생활력이 강한 ]

 

본래 쥐고 나온 것이 없어서인가, 그는 유독 소탈하여 만물에 그다지 큰 욕심이 없었다.

검소하고 청빈한 자세는 가히 타인의 귀감이 되는 것이기에 어린 시절부터 조금 애어른 같은 면모가 보였다. 본디 고아 출신인 그가 길거리에서 지난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그런 성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주변인들에게 퍽 놀라워하는 반응을 이끌어내기엔 충분했다.

 

옛적부터 서글서글한 낯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디든 함께 섞여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임기응변에 능수능란해지는 것은 물론이오,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떨다가도 곧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 주변에 사람이 많고 어느 오지에 홀로 뚝 떨궈놔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만한 자였다.

사찰을 나와 마을로 내려가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말을 붙이는 사람들, 옷자락에 매달리거나 금방 어깨에 올라가 목마를 탄 채로 깔깔 웃는 아이들, 그런 그를 보며 선심쓰듯 간식거리를 쥐여주곤 거사님 앞으로 외상을 달아놓겠단 농담을 하는 저잣거리 상인들까지 그를 반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매번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사찰의 일과 지역 주민의 일을 돕는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솔선수범하였으니 알음알음 그의 이름을 듣고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한 이들을 내치지 않고 그것마저 수행이라 여기며 자신이 고민하고 이해한 교리를 실천하는 것은 주변인들에게 어떠한 분류의 믿음을 주기 충분했다.

1-5.png

반청공교의 교주. 본래 반청공교 내에서는 주지스님으로 불리고 있으나,  부외자들은 주로 교주라 부르고 있다. 대승불교를 계승했다고는 하지만 토착 신앙의 비중 또한 만만치 않은 탓에 기존의 대승 불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여섯의 나이까지 거지꼴로 떠돌던 것을 전 주지가 주워다 길렀다. 한마디로 고아 출신. 말을 할 수는 있었으나 거리에서 자란 고아인 탓에 성씨가 없었으며, 당시 불리던 이름은 신. 한자는 쓸 줄 몰랐으므로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니 그저 제멋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라 짐작된다. 전 주지에게 거둬지게 된 뒤로 소유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이후 관례를 치를 나이가 되자 법명을 받고 이를 자 대신으로 쓰고 있다. 

 

무기로는 편鞭 을 들고 다닌다. 앞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등허리 부근에 매고 있으며, 길이가 상당히 길다. 평소에는 권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가 편을 휘두르는 모습은 대부분 본 적이 없다. 끝에 작은 추가 달려있다.

 

1인칭은 소승小僧. 타인은 대부분 별호로 호칭한다. 귀에 걸고 있는 귀걸이에는 경전이 새겨져 있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일종의 부적처럼 여기고 있다. 귀에 매단 것은 금이 아니고 제 욕심과 업이니 세존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는 것에 의미를 둔다. 

 

스물 셋이 되던 해에 사찰을 떠나 강호를 떠돌며 식견을 쌓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떠났다가 스물 여덟이 되는 해에 전 주지의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그의 수발을 도맡아 했다. 줄곧 그를 돌보며 수행을 계속하다 전 주지가 병사하고 서른 다섯의 조금 이른 나이에 주지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의 평소 행실과 성품을 익히 알고 있던 자들은 그에 반대하거나 기꺼워하는 일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위로와 축하를 건넸다.

 

평소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을 놀아주는 일이며, 의외로 경전 베끼는 일을 가장 싫어하는 편. 온몸에서 금방이라도 쥐가 날 것 같다며 차라리 온 총림의 낙엽을 쓸겠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안대를 쓴 쪽의 기억이 있던 시절부터 이미 다쳐있던 상태였기에 아마 어릴적 구걸 따위를 할 때 다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중. 흉터를 가리기 위해 꼬마 시절에 문신을 했지만, 반청공교로 거둬진 이후론 줄곧 안대를 쓰고 드러내지 않는 중이다.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부끄러운 흔적을 구태여 까발리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아하니 문신을 한 것이 꽤나 멋쩍은 모양. 안대 안쪽의 눈은 시력이 없어 하얗게 셌다고 한다.

1-6.png

[류 난중]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 강호를 떠돌던 진아를 침입자로 오해한 난중이 화살을 쏘았다. 편을 들어 막아내고 곧바로 오해를 풀었지만 이 때의 기억이 겸연쩍은 실수로 남아있는지 아직은 어색한 태도로 진아를 대한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는 과거의 별호가 섞여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총타에 도달한 뒤에도 난중이 진아를 조금 어려워하는 사이였으나, 함께 지내는 동안에 비교적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bottom of page